Travelogue 겨울에 더욱 매력적인 아오모리현의 문화와 겨울 액티비티를 즐기는 하치노헤·도와다호 여행
By 이영재

혼슈는 일본에서 가장 큰 섬이다. 그 최북단에 위치한 아오모리현은 북쪽 지방답게 겨울이면 엄청난 적설량을 자랑한다. 눈은 겨울의 아오모리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중에서도 하치노헤 지역은 바다와 가까워 항구 마을 특유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치노헤의 문화와 생활상, 그리고 도와다호에서 즐기는 겨울 액티비티까지. 겨울에 더욱 빛나는 아오모리현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하치노헤의 맛을 고스란히 담은 미나토 식당
JR하치노헤선의 무쓰미나토역에서 도보로 약 5분 정도 걸어가면 작은 마을 식당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미닫이 문을 열면 아늑한 내부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미나토 식당은 신선한 생선회를 간장 소스에 절여 올린 덮밥, ‘즈케동’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다양한 회를 맛볼 수 있는 ‘The 즈케동’은 이곳의 대표 메뉴이다. 덮밥과 함께 동북 지방 향토 음식인 ‘센베이지루’도 함께 주문했다. 센베이를 넣어 끓인 국물 요리로, 우엉 등 뿌리채소에서 우러난 감칠맛과 쫄깃한 센베이의 식감이 어우러진다. 소박하지만 깊은 맛이 쌀쌀해진 몸을 따뜻하게 녹여 준다.
즈케동이 나오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간장 소스에 살짝 절인 회는 밥이 보이지 않을 만큼 풍성하게 올려져 있고, 그 위에 계란 노른자와 와사비가 화룡점정처럼 살포시 얹혀 있다. 과하지 않도록 절묘하게 간이 되어 있어 생선회 본연의 맛을 살려주고, 식사 중반에는 노른자와 와사비를 조금씩 비벼 맛의 변화를 주며 즐길 수 있다. 한 그릇 안에서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멋진 한 그릇이었다. 점심 시간이나 주말에는 대기줄이 길어지므로 여유 있게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역사와 전통이 깃든 양조장, 하치노헤 주조
무쓰미나토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 거리에는 전통을 자랑하는 양조장 하치노헤 주조가 자리하고 있다. 무려 2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양조장의 건물들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일본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사전 예약을 하면 양조장 내부 투어에 참가할 수 있으며, 견학 후 시음도 할 수 있다(요금은 시음 포함 500엔). 시음회에서는 방문 시기에 맞춰 가장 추천하는 라벨을 맛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며, 계절별 명주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견고하게 지어진 창고는 여름에도 내부를 시원하게 유지하도록 설계되었고, 오래된 장부와 풍년을 기원하는 전통 축제 장신구 등 양조장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들도 전시되어 있다.
시음 후에는 양조장 내에 마련된 판매 매장에서 하치노헤 주조의 자랑인 명주를 구입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전통적인 맛을 이어온 무쓰 오토코야마(陸奥男山)는 혀와 목을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묵직한 느낌이 인상적이었고, 비교적 현대적인 감각으로 빚은 무쓰 핫센(陸奥八仙)은 포도향을 떠올리게 하는 달콤한 과일향이 매력적이다. 쌀과 발효만으로 이렇게 다양한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 밖에도 다양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사과나 복숭아로 만든 과실주, 스파클링 청주 등 새로운 제품 개발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젊은 감각을 더해 발전해 나가는 하치노헤 주조. 일본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견학과 시음에 참여해 자신에게 맞는 한 병을 찾아보길 추천한다.
사람과 문화를 이어주는 하치노헤시 미술관
혼하치노헤역에서 중심가로 걸어가다 보면 모던한 외관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하치노헤시 미술관은 2021년에 리뉴얼 오픈한 미술관으로, 도심과 시민, 방문객을 연결하는 중심 허브 역할을 하는 종합 문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입구를 들어서면 탁 트인 공간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름 그대로 ‘자이언트 룸’은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공간 레이아웃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어, 전시회나 이벤트의 규모에 맞춰 유연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히 전시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작가와 시민,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젝트에도 힘을 쏟고 있다. 서로 협력하며 자극을 주고받고, 함께 성장해 나아가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상설 전시에서는 하치노헤와 인연이 깊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흥미로운 기획전도 꾸준히 열린다. 하치노헤를 방문한다면 한 번쯤 들러 보길 권하고 싶은 공간이다.
로컬 식재료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핫쇼쿠 센터
저녁이 되자 찬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동북지방의 겨울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하치노헤 중심 시가지에서 로컬 버스를 타고 핫쇼쿠 센터로 향했다.
핫쇼쿠 센터는 하치노헤 지역의 식재료를 한데 모아놓은 종합 마켓이다. 쇼핑은 물론 식사가 가능한 푸드코트와 레스토랑도 갖추고 있다. 해산물과 육류, 과일은 물론 건어물과 지역 특산품까지 정말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품목이 갖춰진 실내형 시장이다.
저녁 6시가 넘으면 마켓의 일부는 문을 닫지만 ‘구리야 스타디움’이라 불리는 식당가 구역에서는 저녁 식사가 가능하다.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라멘을 찾는 것이 소소한 취미라 메뉴판을 유심히 살폈다. 라멘과 스시가 함께 구성된 세트 메뉴를 보고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맛있는 것 + 맛있는 것’이라는 단순한 조합이 오히려 흥미를 자극했다.
잠시 후 나온 라멘은 멸치와 가쓰오부시로 우려낸 육수의 맛이 인상적이었다. 소박하지만 깊은 국물맛에 빠져 젓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참치와 방어 스시는 이 가격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만족감을 안겨 주었다. 두툼하게 썰어 올린 회의 식감과 신선함이 뛰어나 ‘이 가격에 이런 스시가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음에 방문한다면, 핫쇼쿠 센터에서 구입한 고기나 해산물을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는 ‘시치린무라’도 꼭 체험해 보고 싶다.
겨울에만 만나 볼 수 있는 도화다호의 풍경, 칸지키 풋패스 체험
다음 날 아침,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체험을 위해 도와다호로 향했다. 눈 속을 걸으며 겨울의 도와다호 풍경을 즐기는 액티비티, ‘칸지키 풋패스’다.
칸지키 풋패스란 눈길을 걸을 때 빠지지 않도록 신발 밑에 덧대는 설피, 즉 스노슈즈를 뜻하는 일본어 ‘칸지키’와 자연 탐방로를 의미하는 영어 ‘풋패스’를 결합해 만든 액티비티의 명칭이다. 북쪽에 위치한 아오모리현은 매년 엄청난 적설량을 기록하는데, 이 눈 위를 직접 걸으며 겨울에만 만날 수 있는 자연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하치노헤 시내를 벗어나 도와다호에 가까워질수록 눈의 두께가 점점 깊어져가는 것을 보며, 마음속은 2시간가량을 눈 속을 걸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새하얀 세계에 대한 기대가 교차했다.
약속 장소인 도와다호 종합 안내소에 도착해 짐을 맡기고 가이드와 합류했다. 구름 낀 하늘에 바람이 살짝 부는 날씨였다. 이런 날씨가 체험하기에 괜찮은지 묻자, 며칠간 이어진 따뜻한 날씨 뒤에 다시 추워져 눈의 질이 약간 샤베트처럼 변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폭신한 눈을 밟는 것이 묘미 중 하나라기에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설렘이 더 컸다.
장비를 꼼꼼히 착용하고 걷는 방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 방향을 틀다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코스 중반에 접어들자 스틱과 스노슈즈에 점차 익숙해지며 제법 박자에 맞춰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눈 위로 넘어지기 때문에 전혀 아프지 않다. 가이드는 오히려 “얼마든지 넘어지셔도 좋다”라고 웃어 보였다. 걷는 도중, 가이드는 스틱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동물 발자국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토끼, 여우, 오소리 등 다양한 생명들이 이 산속에서 겨울을 나고 있었다. 식물 역시 조용히 저마다의 방식으로 계절을 견디고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엽흔(葉痕)’이었다. 잎이 떨어진 뒤 줄기에 남은 흔적의 모양인데, 마치 웃는 얼굴처럼 보여, 다음 해에도 힘내라는 메시지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새하얀 세계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고요했다. 그 고요함 속에 한 발 한 발 발자국을 새기며 자연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코스 중반, 가이드는 지금이 아니면 보기 힘든 것이라며 비탈길로 안내했다. 눈이 굴러가다가 멈춘 눈덩어리였는데 정말 절묘하게도 롤케이크 단면처럼 생겼다. 포근한 날씨와 추운 날씨가 교차하는 시기에만 형성되는 현상으로, 조건이 맞지 않으면 이렇게 얇고 고르게 눈이 말리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산 롤케이크를 뒤로하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날씨는 어느새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산 위로 내려앉았다. 햇살이 만들어내는 숲의 그림자는 눈밭 위에서 파도처럼 일렁였다. 샤베트 같은 눈은 온데간데없고 폭신폭신한 눈 위를 걷고 있었다. 어린 시절 눈을 밟으며 뛰놀던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지루할 틈도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도와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중급 코스의 도착 지점이었다. 하얀 숨을 고르며 호수를 바라보았다. 눈 덮인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검푸른 호수와 그 위에 떠 있는 하얀 섬. 마치 동양화 한 폭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그 앞에 서자 스스로가 한없이 겸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잠시 후 가이드는 가방에서 따뜻한 홍차와 간식을 꺼내 건넸다. 한 모금 마신 홍차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차처럼 느껴졌다. 이곳까지 걸어온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마법 같은 행복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출발 지점으로 내려갔다. 내려오는 길목에도 자연이 만든 얼음기둥과 벌레들의 보금자리가 된 고목 등 재미난 겨울 산속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눈을 밟는 감촉, 차갑지만 청량한 공기, 눈으로 뒤덮인 하얀 도화지 같은 세상.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액티비티였지만 끝나고 나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되었다.
체험에 특별한 제약은 없지만 복장은 신경 쓰는 편이 좋다. 눈이 묻어도 쉽게 털어낼 수 있는 스키웨어나 방수 기능이 있는 옷을 추천한다. 걷다 보면 생각보다 더워지므로 겹쳐 입고 벗기 쉬운 차림이 좋다. 신발은 스노슈즈를 벨트로 고정해야 하므로 등산화나 방수 기능이 있는 겨울부츠가 적합하다.
도와다호 이동은 사전에 예약한 택시를 이용했다. 아오모리 토박이 운전사 덕분에 도와다호에서 오이라세 계류로 내려오는 길에 얼음 폭포를 잠시 둘러볼 수 있었다. 급류와 폭포,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오이라세 계류는 겨울이 되면 폭포가 그대로 얼어붙어 장관을 이룬다. 거대한 물줄기가 시간이 멈춘 듯 얼어붙은 모습은 마치 샹들리에처럼 신비로웠다.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돌아가는 신칸센을 타기 전, 시치노헤 도와다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시치노헤 산지직송 시치사이칸에 들렀다. 이곳은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는 ‘미치노에키’, 즉 도로 휴게소이다. 간단한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무엇보다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싱싱한 농산물과 가공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아오모리현 하면 역시 사과가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농산물이 판매되고 있었다.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지역 농산물을 구매해 보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렇게 1박 2일간의 하치노헤와 도와다호 겨울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항구 도시의 소박하지만 따스한 문화를 느낄 수 있었으며, 아름다운 겨울 풍경도 만끽한 잊지 못할 여행이 되었다. 북쪽의 겨울은 차갑지만, 그 안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은 따뜻했다. 하치노헤와 도와다호의 겨울은 그렇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